치열한 경기에서 만난 시인들...  
작성자 : 박교택 ()
작성일 : 2007/10/19 11:50   (from:58.87.60.92)  
펌글
. 마지막 해설 ㅎㅎㅎ.

지난 글에서 "부디 마지막 경기해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였는데 다행히 한 경기 더 했군요.

비록 선수들은 피를 말렸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흥미진진하였던 한편의
드라마가 막을 내렸습니다.

처음에는 경기실상 및 국제적인 표준을 소개하고자 시작하였던 장황한
글쓰기가 점차 여러 외국 선수들의 글을 참조하면서 경기를 치룬 여러
사람들의 서로 다른 시각을 전달하는 것으로 발전하면서 나름대로
재미를 찾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첫째 이유는 제 자신이 너무나 궁금하여 미칠 지경이어서
여기저기 들여보기를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대회를 마치며 선수들이 올려놓은 마지막 글들을 살피다가 너무 멋진,
가슴에 새겨둘 만한 이야기들이 있어 게재하였습니다.


2. 미국의 Bill선수

패러글라이더로 비행한다는 것은 너무너무 특별한 일이다.
그 안에는 뭔가 마술과 같은 것, 대담한 그 무엇이 있다.

경기에서 잃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 자신의 욕심 내지 야심일 뿐이다.
그런들 어떤가..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잃을 수는 없다.

비행보다 더 즐거운 것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친구와 함께하는 비행”이다.
우리 모두는 우선 친구사이였고, 그 다음으로 경쟁상대였다.
절대 그것을 잊지 말자.

이 마음으로 리그전에 임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맙소 빌씨.


3. 캐나다의 Will 선수

이 선수의 인간미에 호감이 갑니다.

참고로 마지막 경기 전날에 미국과 캐나다 선수가 모여 윌선수의 40회
생일축하잔치를 한후 윌선수의 간을 꺼내어 날씨귀신에게 제사를
올렸다고 합니다.(ㅎㅎ)


(가) 마지막 날의 비행일지중 일부

이륙후 클라우드 베이스까지 올라가서 구름 옆면을 타고
클라우드 베이스보다 더 높이 올라갔다.
구름의 측면을 따라가며 비행하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이맛에 비행하는 것이다.

이 맛을 누리다가 스타트라인으로 되돌아 가는 기체들을 보고서야
내가 세 번째 스타트 시각을 5분이나 지나서 스타트 라인을 지나온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난 스타트 라인으로 돌아가서 다음 스타트 시각에 맞추어
재출발하기보다는 그대로 비행을 지속하기로 하였다.

어차피 고도도 좋은데 뭘...

그후로 두시간동안 정말 재미있는 비행을 하였다.

멋진 상승도 하고, 구름사이의 협곡(cloud canyon)으로 클라우드
베이스보다 더 높은 고도로 비행하였는데 정말 멋졌다.

레이스를 하려고 서둘지도 않았고, 다른 선수들이 앞에 가건말건
신경쓰지 않으며 내 비행을 즐겼다.

그러던중 문득 나를 포함한 일행 5명이 최선두가 된 사실을 알게 되었고,
팀으로 함께 비행하며 함께 서클링을 하였다.

골까지의 마지막 20킬로를 남겨두고 우리는 마지막 글라이딩을
시작하였으며, 검은 구름 밑을 활강하여 충분한 고도로 골에 들어섰다.

굳이 무리를 하지 않고 편안하게 글라이딩을 하여 골인하였으며,
골에 4번째로 도착한 선수가 되었다.

오늘의 비행이야말로 경기비행이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실례이다.

기상이 특별히 좋지는 않았지만 한편 구름의 엣지를 타고 서핑하는 것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번대회를 요약한다면 나는

“이렇게 많은 파일러트들이,이렇게 바짝붙어, 이렇게 약한 상승에서,
이토록 오래동안 비행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번 경기는 겨우 6인치짜리 파도에서 진행하는 파도타기 시합같았다.
(너무나 약한 상승-써멀이 아니라 침하되지 않는 정도의 약한 기상- 을 6
인치짜리 파도라고 비유)

이제 난 내가 경기비행에서 원하는 것, 원하지 않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고 경기비행의 선수로서, 오거나이저로서 보다 균형잡힌 자세를
얻어 가게 될 것이다.

(나) 우화 한가지

여기서 겪은 일화 하나로 마치려 한다.

경기첫날 골에 들어가지 못하고 차를 얻어 타고 코스를 마쳤다.(!)
지피에스 다운로드를 하고 맥빠지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숙소를 향하여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때 갑자기 한 노인이 내게 물었다 “너 파일러트냐?”

난 내가 파일러트같지도 않았지만 대답했다 “예”

노인: 굉장히 재미있겠는 걸. 니네 되게 높게 떠있더라, 기분이 어떠냐?

난 덥고 지치고 골에 못가 침울해 있었지만 그 노인의 주름진 얼굴에
가득찬 열광을 보고 나의 침울한 마음은 한방에 없어졌다

나: 구름 밑에 바짝붙어 비행하는 것은 정말 죽입니다.(나불나불...)

노인: 와! 내 나이 89살인데, 그런 것은 본 적이 없어, 정말 멋있겠구나,
굉장할거야!!

그순간 난 깨닫게 되었다.

오늘 그리고 오늘의 경험의 초점은 -남과 경쟁해서 골에 가지 못하고
실패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그 노인은 나로 하여금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을 불현듯 깨닫게 해 주었다.

“남들과 경쟁해서 이기려고, 남들을 좌절시키려고
내가 비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난 이 다음에도 쫄쫄이를 해서 침울해 지는 날이 오면 그 노인을
기억할 것이다.

경기에서 망가진 날이던, 잘 된 날이던 간에 그러한 평가는 외부의
평가 내지 판단일 뿐이다.

그날의 참된 의미는 성적 카드에 있는 것이 아니다.

크고 강한 써멀은 즐거운 것이여!!!

(다) 윌선수의 이번 성적

위와 같은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선수는 이번경기에서
148 - 298 - 536 - 637 - 814점으로 매경기를 하면서 점진적으로 발전하여
최종적으로는 77위에 오른 캐나다의 선수이며 부메랑 5를 타고 있습니다.

만일 두세경기 더 이루어졌다면 아마도 1,200점도 받지 않았을까..

아마 앞으로 경기력보다는 비행관련 저널리스트로서 많은 일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해 줍니다.


4. 마무리

그동안 일시 켰던 스피커를 닫습니다.

우리 선수단 여러분 정말 고생하였습니다.

(대회 홈페이지 뉴스란에서 마지막날 골인하는 선수 사진이 6장 있는데
첫번째가 피수용선수, 여섯째가 정세용 선수 사진이더군요.

피수용 선수가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마음고생 심하였을 것 같은데
마지막 골인 사진의 행복한 표정을 보고 걱정놓았습니다.

참고로 독일팀 블로그 사진을 보면 피수용, 정세용 두사람이 3초 간격으로
나란히 골인하는 사진이 있더군요.)

당신들 덕택에 난 내집에 편안히 다리뻗고 앉아 손에 땀을 쥐는
멋진 구경 한번 잘했습니다.

무사귀환을 축하드리고, 어려운 환경속에서 우리 민족성에 맞지 않는
기상, 국제사회 강자들의 텃세등과 맞서 싸운 노고를 우리 동호인 모두
기억할 것입니다.